생활물가를 건드린 담합,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진짜 이번 사건은 그냥 “기업들끼리 가격 맞췄다” 정도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밀가루는 빵, 라면, 과자, 국수처럼 우리 일상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는 원재료라서, 가격이 흔들리면 그 여파가 바로 체감되는 품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에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그런 이유로 보인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상징성이 크다.
사실 이런 사건은 단순히 과징금 숫자만 보는 것보다, 그 안에 어떤 구조가 있었는지 봐야 한다. 공정위는 7개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짬짜미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사 착수 후 약 7개월 만에 제재가 이어졌고, 앞서 올해 1월에는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한 고발도 완료된 상태였다.
이번 사건이 더 눈에 띄는 이유는, 이들이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87.7%를 차지하는 과점사업자였기 때문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쥔 업체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건 경쟁의 기능이 사실상 멈췄다는 뜻으로 읽힌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밀가루를 원재료로 쓰는 식품업체들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과징금만이 아니라 ‘가격 재결정’이 함께 나온 이유
이번 조치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대목은 단순한 과징금이 아니라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함께 나왔다는 점이다. 이 명령은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너희가 서로 맞춘 가격 말고, 경쟁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다시 가격을 정해라”라는 강한 시정 조치인 셈이다.
공정위가 이 카드를 꺼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리고 밀가루 담합 사건 기준으로는 2006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공정위는 과거 밀가루 담합 사건에서 가격 재결정 명령 이후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같은 수준의 실질적인 가격 조정이 뒤따를지 관심이 쏠린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이 발언은 사건의 성격을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벌금처럼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를 다시 눕혀 세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공정거래 사건은 종종 “처벌은 받았지만 가격은 그대로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데, 이번엔 그 비판을 의식한 듯하다.
담합은 어떻게 움직였나, 회합과 합의의 반복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담합은 총 2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밀가루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였다. 숫자만 보면 단순 반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전반을 촘촘히 묶어 둔 구조적 행위에 가깝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회합의 방식이다. 총 55회에 걸쳐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이 있었다고 한다. 영업본부장 이상이 큰 틀의 합의를 만들고, 이후 영업팀장 등 실무자급이 세부 내용을 구체화하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담합이 우발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설계되고 실행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원맥 시세가 상승하던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원가 상승분을 빨리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인상 시기와 폭까지 맞췄다고 한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가가 내려가는 구간에서는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핵심이라고 본다. 시장이 올라갈 때는 빠르게, 내려갈 때는 느리게 반영하는 방식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전형적인 가격 왜곡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왜 이렇게 올랐나,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하다
공정위는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이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체감상으로도 꽤 크다. 밀가루는 단일 제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라면, 빵, 과자, 국수 같은 식품 전반의 원가에 영향을 주는 핵심 재료다.
공정위는 또 담합 가담 업체들의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공동행위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고 했다. 즉, 가격 조정이 단지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실제로 업체들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대목 때문에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더 엄중하게 본 것으로 분석된다.
과징금 규모: 6710억4500만원
담합 기간: 약 6년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합 횟수: 총 55회
밀가루 가격 상승폭: 약 38% ~ 최대 74%
| 구분 | 내용 |
|---|---|
| 제재 대상 |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
| 시장점유율 | 국내 B2B 밀가루 시장 87.7% (2024년 매출액 기준) |
| 관련매출액 | 약 5조6900억원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 가격 재결정 명령 | 독자적으로 가격을 다시 산정하도록 하는 시정명령 |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
이번 사건이 특히 질이 나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정부의 물가 안정 사업기간, 즉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 사이에 471억원을 지급받고도 담합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공공의 지원이 들어간 시기라면 오히려 가격 안정을 기대하는 게 정상인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부분은 민생과 정책 신뢰를 동시에 흔드는 대목이라 더 무겁게 읽힌다.
공정위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담합 관련 매출액 약 5조6900억원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했다. 법상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상 가능한 과징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지만, 이번에 확정된 총액만으로도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이다. 사조동아원이 1830억원으로 가장 큰 과징금을 받았고,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등도 1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공정위만의 판단으로 끝나는 구조도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밀가루 가격 변동 여부, 변동 폭과 시기 등을 합의한 혐의로 제분 7사 중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 조사 도중 검찰이 고발 요청을 하면서 사건이 병행된 것도 이례적이다. 평소엔 공정위 조사 뒤 검찰 고발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수사기관의 문제의식이 훨씬 빨리 움직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제재가 앞으로의 밀가루 시장에 남길 신호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왜 먹거리 가격은 늘 이렇게 민감하게 오르는데, 내려올 땐 느리냐”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밀가루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담합을 더 강하게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도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의미 있는 건, 단순히 한 번의 대규모 과징금 부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재결정 명령, 향후 3년간 연 2회 가격 변경 현황 보고, 이미 진행된 고발과 검찰 기소까지 이어지면서 시장에 강한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제재가 더 크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비로소 시장 질서가 조금씩 회복된다. 진짜 중요한 건 여기다.
밀가루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구조를 잘 보지 않게 되는 품목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 익숙함 뒤에 어떤 방식의 가격 통제가 숨어 있었는지 아주 선명하게 드러냈다. 앞으로 빵 한 조각, 라면 한 봉지를 볼 때도 원가 구조와 유통 질서를 한 번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생활물가를 좌우하는 시장일수록 경쟁은 더 투명해야 하고, 그 기준이 무너지면 제재도 훨씬 더 단호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